다시 쓰는 쓰레기 이야기 _ ep.6 크리에이티브 아트 이승규 대표

블로그  |  2024.09.27  |  #인터뷰 #자원순환 #업사이클링아트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이올린, 깡통으로 만든 첼로로 연주를 한다고요?"

버려진 재료로 악기를 만들고, 쓰레기로 독특한 피아노 퍼포먼스를 펼치는 발명가를 만나고 왔어요. 오늘 인터뷰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들이 어떻게 새로운 가치로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한 도전을 담고 있답니다. 끝까지 읽고 나면, 여러분도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될지 몰라요.

ep.6 크리에이티브 아트 이승규 대표

 

©수퍼빈

 

©수퍼빈

"쓸모없음에서 쓸모 있음을 찾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아트 이승규 대표

 

 

 

수)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규) 안녕하세요, 크리에이티브 아트의 대표 이승규입니다. 저희 회사는 기후 환경과 예술을 결합하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어요. 현재는 업사이클 현악기와 타악기를 개발하고, 공연 콘텐츠를 기획, 제작, 유통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는 공연 기획가, 작곡가, 피아니스트, 발명가, 연출가 등 다양한 역할을 맡고 있어요. 코로나19로 많은 예술가들이 일자리를 잃고 힘든 상황을 겪으면서, 우리가 버린 쓰레기와 기후 환경 변화가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이 문제를 예술과 접목시켜 해결해 보고자 다양한 시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수)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네요! N잡러로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철학은 무엇인가요?

규) 정크아티스트들과 함께 농약 분무기 통으로 첼로를 만들면서 N잡러로서의 삶을 시작했어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열정으로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죠. 직업에서 세부적인 역할보다는 그 안에 담긴 가치와 철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은 독학으로 시작했어요. 혼자서 현악기를 익히면서, 유니크 첼로를 만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악기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었죠. 그 경험 덕분에 업사이클링 플라스틱으로 비올라와 바이올린을 제작하게 되었고, 울림통이 작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해냈죠.(웃음) 섬세한 악기인 바이올린에 특히 많은 정성을 쏟았어요.

 

©수퍼빈

 

수) 어렸을 때 ‘발명가’를 꿈꾸는 친구들이 있었던 게 떠오릅니다. 어떻게 해야 발명가가 될 수 있나요?

규) 저보다 뛰어난 발명가들이 많으니, 이런 질문은 니콜라 테슬라나 토마스 에디슨에게 물어보는 게 더 좋을지도 몰라요.(웃음) 그래도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자면, 발명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발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발견이 있어야 발명이 가능합니다.

발견은 물질과 그 구성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자신의 관점에서 정의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발명은 이러한 발견을 바탕으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며, 발견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쓰레기로 악기를 만들 수 있겠다는 저의 발견이 유니크 첼로 발명으로 이어졌죠.

좋은 발견을 위해서는 ‘관찰력’과 ‘끊임없는 질문’이 필수적입니다.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고, 사물이나 현상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죠. 영화감독 봉준호가 "주변만 둘러봐도 영감받을 것이 너무 많다"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작은 것들에서도 큰 영감을 얻을 수 있어요. 깊이 관찰하면 새로운 시각이 생기고, 그 시각이 창작의 시작이 됩니다. 이렇게 도출된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갖죠.

수) 버려진 물건들을 활용해 악기를 제작하는 이 독창적인 작업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규) 우연히 유튜브에서 파라과이 랜드필 오케스트라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어요. 10년 전쯤의 이야기인데, 빈민촌 아이들에게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만든 악기를 주고, 연주법을 가르쳐 합창단을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장면이 담겨 있있었어요. 이들의 창의적인 접근 방식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나무가 아닌 다른 물질로도 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새로운 개념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래는 제가 예술과 환경 문제를 연결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던 '파라과이 랜드필 오케스트라'의 영상입니다.

▶️ 파라과이 랜드 필 오케스트라 영상 보러 가기

 

플라스틱 바이올린의 직선적 요소를 설명하는 이승규 대표 ©수퍼빈

수) 제작하신 악기 중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과 도전적이었던 작업을 소개해 주세요.

규)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은 처음 만든 유니크 첼로, 일명 '깡통 첼로'예요. 시골에 버려진 농약 통을 재료로 사용해 만들었는데, 서로 다른 물질이 결합하면서 독특한 소리와 시각적 아름다움을 보여줘요. 무엇보다 쓸모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특히 마음에 들어요.

가장 도전적이었던 작업은 업사이클 플라스틱으로 만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예요. 나무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해 기존 현악기의 소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형태로 제작하는 게 쉽지 않았거든요. 특히 플라스틱 판재에 곡선을 주는 방식에 대해 많은 고민이 필요했죠.

전통적인 바이올린과 첼로는 곡선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숫자 8자 모양 같기도 하고 여인의 뒷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해요. 저는 기존 디자인에서 벗어나 새로움을 주고 싶어서 직접 디자인에 도전했습니다. 독특한 색상의 재활용 플라스틱 판재를 선택하고, 곡선을 직선으로 변형해 날카롭고 개성 있는 스타일을 표현했어요. 이 작업이 제 첫 디자인이었고, 특허까지 받았어요. 디자인 과정에서 대칭과 비율, 그리고 기술과 디자인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자동차를 만들 때 디자이너와 공학자가 컨셉을 두고 의견이 갈린다는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해가 되더라고요. 현실적인 문제나 비용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니까요.

 

유니크 첼로와 플라스틱 바이올린 ©수퍼빈

수) 업사이클링 악기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규) ‘쓸모없음에서 쓸모 있음을 찾는다’는 저희 회사의 핵심 메시지처럼, 쓸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업사이클링 악기를 통해 무가치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이 어떻게 의미 있는 존재로 바뀔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업사이클링 뮤직이라는 장르를 통해 ‘너 역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어요.

'가치 없음'과 '가치 있음'의 차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또한, '쓰레기'라는 개념에는 물질적인 폐기물뿐만 아니라 마음의 쓰레기(스트레스, 우울, 분노)와 사회적 쓰레기(혐오, 차별)도 포함된다고 봐요.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쓸모를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확장하는 게 중요하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철학이에요. 철학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니까요.

 

 

 유니크 첼로의 브릿지 ©수퍼빈

수) 쓰레기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연주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규) 일단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어려움이 많았어요. 악기 구조, 업사이클 소재, 설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질문과 실험을 계속하면서 주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기술 특허 1건, 디자인 특허 2건, 상표 특허 출원 2건을 하게 되었죠.

연주자를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새로운 악기와 장르를 이해시키는 일이었어요. 기존의 연주자들은 500년 된 전통 첼로에 익숙했지만, 유니크 첼로는 완전히 새로운 악기였기 때문에 처음에 모두 당황했죠. 이 악기의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어요. 첼로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성격을 파악해야 했죠. 초보 엄마가 아기를 돌보면서 실수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처럼, 연주자들도 신생아와 같은 이 새로운 첼로에 익숙해져야 했어요. 처음에는 소리가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연주자들이 줄의 종류와 브릿지 위치를 조정하면서 소리를 맞추는 과정을 거쳐 이제는 유니크 첼로만의 독특한 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쓰레기를 활용한 즉흥 피아노 연주 ©수퍼빈

수) 쓰레기를 활용한 피아노 연주 퍼포먼스는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궁금해요!

규) 저희 기업의 모토는 ‘예술은 새로운 질문이며 최초의 질문이다’예요. 이 모토를 바탕으로, 제 예술적 행위가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길 원해요.

프리페어드 피아노는 20세기 초에 존 케이지가 개발한 개념으로, 피아노의 현에 직접 영향을 줘서 소리를 변화시키는 연주법이에요. 기본적으로 피아노는 건반을 눌러 해머가 현을 쳐 소리를 내지만, 이물질을 추가하면 소리가 완전히 달라져요.

저는 여러 종류의 쓰레기(플라스틱, 캔, 비닐, 천 등)를 현 위에 놓아보는 실험을 통해, 물체의 종류와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소리가 나는 걸 경험했어요. 정말 흥미로웠죠. 여기에 줄을 튕기거나 문지르는 기법을 추가하면 소리가 더 독특해져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에서는 마음속의 쓰레기를 메모지에 적어 피아노 현 위에 던져 넣고, 공연이 끝날 때 메모지를 찢어버리게 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 독특한 방식에 감동을 받는 것 같아요. 쓰레기로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는 것이 다소 예상 밖일 수 있지만, 이 방식은 전통적인 굿판처럼 관객의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을 해요.

 

▶️ 프리페어드 피아노 연주 영상 보러 가기

 

©수퍼빈

수) 빈칸을 자유롭게 채워주세요! "쓰레기는 _____(이)다."

규) 쓰레기는 질문이다.

무언가를 창작하고 발견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해요. 물론 새로운 질문도 중요하지만, 최초의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질문이 결과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라이트형제 아시죠? 자전거 수리공 출신이었지만, ‘왜 우리는 하늘을 날 수 없는 걸까?’라는 최초의 질문에서 시작된 탐구가 결국 비행기를 탄생시켰죠. 이처럼, 질문이야말로 창의성과 혁신의 출발점이 되며,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데 필요한 힘이 된다고 믿어요.

 

©수퍼빈

수) 앞으로 크리에이티브 아트 공연 기획사를 통해 어떤 새로운 도전을 계획하고 계시나요?

규) 공공기관, 기업과 함께하는 ESG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기업에서 버려진 플라스틱을 수거하고 분류, 세척, 가공하여 악기를 조립하고, 이를 문화 소외 계층에 기부하는 형식입니다. 현재는 코트라 광주전남지원센터와 광주 시청자 미디어 센터와 협력하여 이 캠페인을 진행 중이에요. 이 외에도 기후 환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공연 콘텐츠를 넘어서 ESG 캠페인, 교육 사업, DIY 체험 키트 제작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을 확대하고자 해요.

 

수) 마지막으로, 다가오는 가을에 듣기 좋은 음악 한 곡 추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규) 제가 작곡한 <위로>라는 곡을 추천할게요. 유니크 첼로 콰르텟 1집의 메인타이틀곡입니다. 이 곡을 만들면서 고민했던 메시지는 ‘쓰레기로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였어요. 쓰레기라는 하찮은 존재에서 가치와 쓸모를 찾아내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와 관점이 얼마나 좁고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진정한 위로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 유니크 첼로 콰르텟 1집<위로> 중 <위로> 들으러 가기

 

이승규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한 수퍼빈 크루 ©수퍼빈